목마른 야채 ㅣ 김은주 ㅣ 믄믄

2023. 11. 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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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야채 ㅣ 김은주 ㅣ 믄믄

 

시간이 가면 어른은 아이가 되려 하고 아이는 어른이 되려고 한다. 어른은 그냥 아이가 되어가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는 길이 그리 쉽지 않다. 가슴 아픈 사실은 노력을 해야 아이는 어른이 되는 건데 그렇지 않고 이미 어른이 된 아이다.

선우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아빠가 미안하다고 할까 봐 생각만 한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건 할머니가 해줬던 몸통이 크고 두툼한 생선구이,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구름을 품에 안은 것처럼 따듯해지는, 그리고 먹고 나면 키가 훌쩍 자란 기분이 드는 그 생선구이가 먹고 싶었다. 가뜩이나 키도 작으니 더 먹고 싶었겠다. 타 큰 어른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선우한테 그 생선구이를 해주고 싶어 진심으로 여러 생선들을 구웠는데 선우가 그때 먹었던 그 생선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 때 선우는, 생선은 무조건 굽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이미 어른이 된 아이의 티가 여기서 났다.

"사람에게 마음 그릇이 있다면, 어린 시절 내 마음 그릇은 간장 종지보다 작았다. 사소한 일에 울고, 짜증 내고, 기뻐했다. 태엽을 잔뜩 감아놓은 미니카처럼 미친 듯이 날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변덕쟁이였다."

"오늘도 아침부터 물 고프다며 보채는 식물을 위해 물조리개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왔다. 파라라라, 좁은 주둥이 사이로 흘러내린 물줄기가 돌멩이와 맞부딪치며 신비한 소리를 낸다. 작은 별사탕 수백 개가 부딪치는 것 같다. 이렇게 물을 줄 때면 꼭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처럼 미소가 떠올랐다."

"길다란 나무의 모습을 액정 안에 담기 위해 멀리 떨어져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화분 앞에 엎드려 사진을 고르다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통통한 선우의 얼굴이 화면 가까이에 있고 선우의 뒤로 할머니, 엄마, 아빠가 나란히 앉아있다. 할머니는 꾸뻑 조는 모양이고, 아빠는 리모컨을 붙잡고 TV를 보고, 엄마는 선우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다. 사진 속 엄마는 살아있는데 존재만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토마토 나무 관찰하는 것이 아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의무감 때문이 아니었다. 아침이 올 때마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물 먹은 다음날은 파랗고 빳빳한 잎들이 바글바글 매달렸다. 그 꼿꼿한 모양이 너무 귀여워서 날마다 주고 싶었지만, 꾹 눌렀다. 대신 가지마다 돋아있는 보숭보숭한 솜털을 매일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늘 만져주어야 건강한 열매를 맺는다는 마리의 말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매일 열심히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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