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세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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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 황석희 | 달
번역: 황석희 우리 삶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도서에도 번역은 존재하지만, 표기는 대체로 ‘옮김’이고 저자 이름의 옆 또는 하단에 적혀 있어 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만나는 ‘번역’ 글자는 엔딩크레디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그것도 크레디트와 다른 위치에 대체로 큰 글자로 튀어나온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물론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말이다. 스크린 속 ‘번역’이란 글자 옆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이름 석 자가 있다면 ‘황석희’일 것이다. 그 이름이 뜨는 순간 좌석 곳곳에서 “역시 황석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황석희가 이번엔 ‘작가 황석희’로, 관객이 아닌 독자를 ..
2024.01.01 -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 하현 | 비에이블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세상에는 ‘실내형 인간’이란 종족이 있다.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반갑고 기대됐지만, 어쩌다 약속이 취소된 날 게다가 날씨까지 맑다면 혼자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들 말이다. 실내형 인간들은 이 은밀하고 달콤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 보편적이고 적당한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쁨을 발견할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책은 이렇게 내 마음대로 연결되고 고립되고 싶은 마음 등 솔직히 들여다보면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여러 감정의 모습들을 그렸다. 《달의 조각》을 시작으로 그 섬세하고 다정한 글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하현 작가의 신작 에세이로, 이번 책에서는 좀 더 일상의 모퉁이에 숨겨진 감정의 조..
2023.11.07 -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 사지 않아도 얻고, 버리지 않아도 비우는 제로웨이스트 비건의 삶 ㅣ 이은재 ㅣ 클랩북스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친애하는 지구를 위해 쓰레기를 줄이는 중입니다. 고기도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들어보면 별일 아닐지도 모르겠다. 막상 해보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돈이 많아야 한다거나 힘이 세야만 한다는 등의 자격도 필요치 않다. 오래 때를 기다리거나 애써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나이가 많거나 적어도 각자 나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대체 왜 ‘아무나 할 수 없는’이란 묘한 단서가 붙은 거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안 하면 편한데 하면 퍽 불편하고 귀찮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 불편함이나 귀찮음을 뛰어넘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한다. 만약 ‘이 단어’가 마음속에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내가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작..
2023.11.02 -
아무튼, 술 ㅣ 김혼비 ㅣ 제철소
아무튼, 술 아무튼 시리즈의 스무 번째 이야기는 ‘술’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김혼비 작가가 쓴 두 번째 에세이로,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당당히 “술!”이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 모든 술꾼들을 위한 책이다. “술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된 작가는 수능 백일주로 시작해 술과 함께 익어온 인생의 어떤 부분들, 그러니까 파란만장한 주사(酒史)를 술술 펼쳐놓는다. 소주, 맥주, 막걸리부터 와인, 위스키, 칡주까지 주종별 접근은 물론 혼술, 집술, 강술, 걷술 등 방법론적 탐색까지… 마치 그라운드를 누비듯 술을 둘러싼 다양한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작가를 좇다 보면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주종과 방법을 시도해보고 싶은 애주가나 여태 술 마시는 재미도 모르고 살았다는 기분..
2023.11.02 -
마음이 하는 일 ㅣ 오지은 ㅣ 위고
마음이 하는 일 ㅣ 오지은 ㅣ 위고 메탈리카를 좋아하게 된 건 고교 1학년 때다. '혁재'라는 친구가 쉬는 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어서 물어보니 메탈리카라고 했다. 혁재는 통통하고 얼굴이 하얗고 귀엽게 생긴 누가 봐도 부잣집 아이처럼 동그란 눈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어폰을 내 귀에 가져간 순간 다른 세상이 찾아왔다. 그리고 정말 웃기는 얘기지만 그때 기타리스트가 될 거라고 다짐했다. 혁재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지그시 누르면 베이스가 더 잘 들린다는 팁도 알려줬다. 그때는 이어폰에 작은 스펀지가 항상 매달려있었는데 지긋이 귀에 눌러보면 차음이 돼서 베이스가 살아난다. 손가락 이퀄라이저인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이어폰은 지긋이 누르면 노이즈캔슬링인데, 지금도 지긋이 누를 때마다 그때가 가끔 생..
2023.11.02 -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 : 허우적거릴지언정 잘 살아 갑니다 ㅣ 김민주 ㅣ 팜파스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 : 허우적거릴지언정 잘 살아 갑니다 ㅣ 김민주 ㅣ 팜파스 서핑을 너무 해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어 여름휴가 때 가야지 했던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다. 혼자 가야 해서, 코로나 때문에, 일 때문에 뭐 이런 핑계들로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그런데 왜 정말 서핑을 하고 싶은 걸까 매번 미루기만 하는데 말이다.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리는 그런 활동들은 거의 없었는데 스노우보드를 타게 되면서 겨울이 기다려졌다. 겨울 냄새도 좋았고 바람을 맞는 것도 좋았다. 무지 겁났지만 상급자 슬로프를 처음 타고 내려온 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점프하다가 심하게 굴렀는데 보드가 바닥에 꽂혀서 무릎이 돌아가는 사고가 났었다. 마음속으론 정..
20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