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칼 구스타프 융 | 조성기 | 김영사

2023. 11. 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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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 : 기억 꿈 사상
카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 융의 제자이자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1957년부터 약 5년 동안 그와 나눈 대담을 엮은 것이지만, 융이 직접 문장들을 검토하였기 때문에 거의 융 자신의 집필로 이루어진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해야 한다는 융의 뜻에 따라, 그가 86세의 나이로 죽은 다음해인 1962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과학주의를 넘어 인간정신의 신비를 분석한 심리학자 융의 사상세계로 안내하는 입문서이다. 그가 남긴 육성을 통해 한 인간의 정신적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일생 동안 종교적인 주제에 매달리며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한 그의 노력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자서전은 전 생애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융합을 추구한 한 인간의 가장 충실한 자기실현의 역사를 전해준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평생을 사로잡은 꿈, 죽음을 앞두고 경험한 환상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을 분석하고 의식화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양장본]
저자
카를 구스타프 융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07.12.1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칼 구스타프 융 | 조성기 | 김영사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살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수년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메모가 필요했던 책이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사색해 보면 그를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전에 한껏 움츠려있는 인격이 어떤 부분 때문에 회복이 더딘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떄문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나쁘든 다른 사람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나로서는 그녀가 평생을 통해 자기 죗값을 치르도록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욱 뜻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녀의 운명에 의해 충분히 벌을 받았다.

꿈은 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보상 바로 그것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나는 억압기제가 연상장애에도 작용하고 있으며, 내가 관찰해온 사실들이 그의 이론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프로이트의 논지를 단지 지지할수는 있었다.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외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그러한 사례들을 프로이트에게 제시했으나, 그는 성욕 외의 다른 요인들을 원인으로 여기려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로서는 자못 불만스러웠다.

'친애하는 융, 성이론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십시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보시오, 우리는 성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보루 같은 것 말입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일이다.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떄문이었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희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의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의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아니마와의 관계서 나는 늘 나 자신이 원래 어떤 역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야만인처럼 여겨진다. 마친 이전도 이후도 없이 그야말로 무에서 생겨난 자같이 생각된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것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떄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죽음은 하나의 즐거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원의 관점에서 죽음은 일종의 결혼이며 융합의 비의다. 영혼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결여된 반쪽에 도달하여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의 관들에는 그 희열이 무희들로써 묘사되었고, 에트루리아 무덤들에는 향연으로 표현되어 있다.

경건한 유대 신비주의자 시몬 벤 요카이가 죽을 떄 그의 친구들은 그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지방에서 만령절에 무덤으로 소풍을 가는 풍습이 있다. 이 도믄 것은 죽음이 본래 하나의 축제라는 지각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이게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오로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조상이 이미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머덩하구나' 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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