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 황석희 | 달

2024. 1. 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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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우리 삶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도서에도 번역은 존재하지만, 표기는 대체로 ‘옮김’이고 저자 이름의 옆 또는 하단에 적혀 있어 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만나는 ‘번역’ 글자는 엔딩크레디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그것도 크레디트와 다른 위치에 대체로 큰 글자로 튀어나온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물론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말이다. 스크린 속 ‘번역’이란 글자 옆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이름 석 자가 있다면 ‘황석희’일 것이다. 그 이름이 뜨는 순간 좌석 곳곳에서 “역시 황석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황석희가 이번엔 ‘작가 황석희’로, 관객이 아닌 독자를 찾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인 ‘번역 황석희’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 황석희』는 저자가 일과 일상에서 느낀 단상을 ‘자막 없이’ 편안하게 풀어쓴 에세이다. 한 줄에 열두 자라는 자막의 물리적 한계와 정역(定譯)해야 한다는 표현의 제한에서 벗어나 저자는 스크린 밖에서 마음껏 키보드를 두드렸고, 그 자유로운 글들은 SNS에도 올라왔던 몇몇 게시물들과 더불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데드풀〉 〈스파이더맨〉 〈파친코〉 등 다양한 작품에서 느꼈던 직업인으로서의 희노애락, 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언중에 대한 생각과 내밀한 속마음까지. 그는 번역가답게 자기 앞의 일상을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냈다. 언어학도 번역학도 아닌 이 책의 제목이 『번역: 황석희』로 붙여진 이유 중 하나다. 저자가 해석한 일상은 우리 곁에도 존재한다. 그러니 그의 번역본을 보면 각자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번역하며 살아왔는지, 오역과 의역이 남발하는 이 일상 번역이 서로 얼마나 닮아 있고 다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한 일상을 새로이 번역할 낯선 시선을 하나 얻어갈 것이다. “늘 정역에 묶여 있는 저는 이렇게 일상을 부담 없이 번역해 세상에 내보인다는 게 묘한 일탈처럼 즐겁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을 어떻게 번역하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나의 일상을 잘 번역하려면 영화 번역은 혼잣말이나 대화, 즉 사람의 말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대본에 적혀 있는 대사는 사람의 입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뉘앙스라는 옷을 두르고 새로운 의미를 품기 때문에 번역을 단순 해석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말처럼 번역은 발화자의 표정과 동작, 목소리 톤을 살펴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하는 작업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뜸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말한다. 번역을 언어 사이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표의와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면 우리 삶은 번역이 필요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연인에게서 받은 ‘끝나면 잠깐 보자’라는 문자는 둘 사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장들로 번역할 수 있다. 상사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이 점심시간이 아니라 회의시간이라면 발표자는 긴장하게 된다. 다만, 일상 번역에 정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연인은 그저 심심했을 수 있고 상사는 그날따라 눈이 뻑뻑했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기에 대화에는 항상 ‘빈칸’이 존재한다. 그 틈을 허투루 알거나 무시해버리면 오해와 자의적 해석이라는 형태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세심히 관찰하고 짐작하며 조심조심 다음 ‘대사’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실 말은 원래 그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캐릭터들의 대사를 약 100만 개 가까이 번역하며, 그간 쌓은 노련함을 자신의 현실에 대입한다. 언제든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언어를 무기처럼 구체화하여 사용”하는 “후진 사람”이 되지 말고, “있어 보이는 척” 타인의 노력을 꺾지 말고, 오지랖 같은 “어긋난 호의”를 보이지 말자고. 아직도 번역이 어렵다 말하는 저자지만, 그의 섬세한 작업은 우리의 일상을 배려있게 번역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 그럼에도 오역하게 된다면 어쩔까. 그럴 땐 상대에게 정중히 되물으면 그만이다. 감독이나 작가가 이역만리에 있는 영화 번역가와 달리 우리는 다행히도 그 진의를 설명해줄 상대방이 (대개는) 눈앞에 있다. 다시금 뉘앙스의 힌트를 구하고 실수했다면 정정하면 된다. 여러 갈래로 읽을 수 있어 헷갈리겠지만 그 갈림길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즐거움이 숨어 있다. “일상의 번역은 오역이면 오역, 의역이면 의역 그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까.
저자
황석희
출판
출판일
2023.11.17

번역 :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 황석희 | 달

10년 전의 나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쇠퇴한 것도 많다. 뒤로 물러가거나 느려진 것 중 하나를 꼽자면 타이핑 속도다. 한글과 영문을 지금도 편하게 타이핑하지만 특히 영문은 '아 여기 이쯤에 있었는데?' 할 때가 많고 한글 타이핑은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언제부턴가 이런 게 좀 거슬리더니 손톱이 아주 조금 자랐는데 그게 타이핑할 때 자꾸 신경 쓰여서 손톱 깎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 이 글을 쓰다가 손톱을 깎았는데 사실, 자주라고 생각되지만 일정한 기간일 텐데 그 시기가 빨리 온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방금 들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에세이다.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도 있고 왠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서 나이대도 비슷한가 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맞춤법에서는 특히 '좋은 일 있길 바라~'에서 '바래~'로 쓰고 싶은 충동이 정말 볼 때마다 드는데 이걸 글로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한때는 자막 안 보고 영화 보는 게 이루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여전히 자막을 봐야만 영화를 볼 수 있으니 아직 이루지 못해 한이 된다. 마치 외국 영화 주인공이 한국어를 능수 능란하게 하는 것 같은 착각이 자막의 힘 아닐까. 특히나 '데드풀'은 자막은 최고인 것 같다.

어떤 일이라도 오랜 기간 성실하게 하면 전문가가 된다. 경비 업무도 마찬가지고 번역 일도 만찬가지 일 테다. 각자 일하는 업계는 달라도 그 안에서 행해지는 것들은 비슷하구나를 또 한 번 느낀다. 간혹 말할 때마다 '우리는~'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우리'는 특정한 '우리'가 아닌 그냥 '우리' 인 것 같다.

영화 '내 사랑',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가 나오는 Maud Kathleen Lewis 얘기를 담은 내가 무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걸 번역했다는 게 반가웠다. 아무튼, 번역한 영화를 관객들 틈 사이에서 반응을 느끼려고 영화관에 갔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친구랑 또 보려는데 이 영화 내일도 해요?"라는 말을 듣고 엄청 좋았다고 한다.

"영화 번역가로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은 “내가 번역한 영화를 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줄 때”가 아니라 “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주는 영화를 내가 번역했을 때”다. 얼핏 같은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저렇게나 좋아해주는 영화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던 행운. 내 손으로 고이 보듬어 내놓을 수 있었던 행운. 그 모든 건 행운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그 할머니 관객의 말을 듣고 느낀 감정의 정체는 감사함이었다. 그 우연한 행운에 대한 감사함." 

직업인으로써의 번역 일에 대한 내용과 개인의 삶을 적절하게 잘 섞어놓은 아주 재미있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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