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 22:55ㆍ책
- 저자
- 정진영
- 출판
- 서랍의날씨
- 출판일
- 2023.01.30
안주잡설 : 당신의 술자리를 빛나게 해주는 식탁 위의 ‘그것’! ㅣ 정진영 ㅣ 서랍의날씨
책 앞에 추천사나 추천의 글이 있기 마련인데 이건 시식 후기라고 저자의 아내인 박준면 씨가 쓴 글이 나온다. '라면 먹고 갈래?'의 경험담이었던 것이다. 어디서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이 둘은 웃음 지을 것 같다.
술이 노동을 조금 수월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 알았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알게 되었다. 스무 살 때였다. 군대 가기 전에 시간을 좀 내서 내가 없는 동안 조금이라도 집안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꽤 오랫동안 힘든 일들만 골라서 했었다. 공사장 막노동은 현장 상태에 따라서 강도가 차이가 나긴 했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묘목을 가식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묘목은 일부였고 다 큰 나무를 팔리기 전에 심어놓고 팔리면 또 파서 옮기고. 하루 종일 나무를 가지고 와서 땅 파고 심고를 반복했다. 그 나무들은 산에서 본 큼직한 멋진 나무, 웅장한 묘소에 있을만한 나무들이었다. 아마 지금 한다면 한나절도 버티질 못할 것 같다.
그때 일했던 아저씨들 중 나와 짝이 되어 같이 일했던 분은 나이를 물어보니 60세였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하루 종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일했다. 그때 그 아저씨는 아침을 먹고 소주 두병을 가지고 와서 땅을 파고 묻어놨다. 2월 즈음이니 응달에는 땅이 얼어있어 냉장고가 따로 없었다. 그때 술은 친구들과 멋모르고 마시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없었는데 그 땅에 묻어놓은 소주는 조금 특별했다. 아저씨와 점심 먹고 한 병을 정확하게 반 나눠서 한 잔씩, 나머지 한 병은 참을 먹고 난 후 또 반을 나눠 한 잔씩. 이렇게 한 번에 마신 소주가 삽질을 더욱 부드럽게 해줬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리듬을 타서 삽질을 할 수 있게 도와줬었다. 기분을 좋게 하는 게 아니고 고통을 덜어주는 수단이 됐다. 참 시간에 소주를 마신 후 아저씨는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가수 같았다. 그때는 몰랐던 노동주, 노동요였다. 아저씨들이 나를 이뻐해서(왜 이뻐했는지는 모르겠다.) 용달차 운전하는 것도 알려주고 엄청 큰 포크레인 기사 아저씨는 그 큰 바가지에 나를 올려놓고 이동도 시켜주고 놀이 기구 마냥 재미있게도 해줬었다. 지금 보면 미쳤다고 했을 것 같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식목일이 대목이라 그때는 삽질하지 않고 나도 같이 판매를 하는데 구입한 나무를 차에 실어다 주면 팁도 받았다. 나무가 그렇게 비싼지 몰랐었고 그렇게 고급차를 한 번에 본적도 없었다. 매년 봄이 되면 그때가 떠오르는데 그 아저씨들 아직까지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길.
가장 맛있게 술과 안주를 즐긴 게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생참치 회에 라임 소주이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생참치를 쉽게 즐길 수 있지만 그때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이판에 갔었을 때 먹었던 생참치에 소주는 언제나 내게 최고의 조합이다. 사이판 가면 하루 종일 골프 치고 저녁에 예약한 식당으로 간다. 주문했던 생참치가 나오고 소주도 시킨다. 소주는 왜 국내에서 보다 항상 해외에서 더 맛있을까. 육개장 사발면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소주를 시키면 얼음도 같이 준다. 이때 얼음은 각 얼음이 아니고 간 얼음도 아닌 모양이 제각각인 깨진 얼음이다. 거기에 라임까지 같이 준다. 원래는 온더락잔에 얼음을 채우고 소주 넣고 손으로 라임을 한번 쭉 짜서 마시면 되는데 더 괜찮은 맛을 위해 출국하기 전에 레몬 스퀴저를 사서 가지고 갔다. 알뜰하게 라임을 짜서 얼음과 소주가 들어 있는 잔에 채운 다음에 숨도 안 쉬고 원샷을 한다. 그 청량감을 충분히 느끼고 다 가시기 전에 생참치 회 한점에 고추냉이를 올려 먹으면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그렇게 배불리 즐기고 마지막은 된장짜글이로 마무리를한다. 얼큰하게 취해서 마사지를 받고 취기가 좀 가시면 호텔에 와서 마지막으로 딱 한잔 더 하 해야 끝이 난다. 라오라오베이는 바닷가를 낀 골프장이라 중간에 바다를 향해 샷을 한 번씩 날려줘야 한다. 그 샷이랑 라임 소주의 청량감 때문에 이후로 사이판을 다섯 번 더 가게 됐었다.
너무 책 얘기를 너무 안한 것 같다, 저자가 쓴 글에서 평양냉면은 금단현상이 있다는 말에 동감이다. 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편인데 딱 한 가지 있다면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북구독서비스를 이용하면 이런 책들을 부담 없이 만나볼 수 있어 좋다. 언제고 읽을 수 있고 언제고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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