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 17:31ㆍ책
나는 너랑 노는 게 제일 좋아 : 아끼고 고맙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ㅣ 하태완 ㅣ 북로망스
매일매일이 휴가인 나는 생각해 보니 19년도부터 지금까지 여름휴가는 가질 않고 회사를 며칠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래도 휴가 기간이라도 정해야지 싶어서 며칠을 정하고 휴가 때 뭘 할까 생각하다가 운동을 쉬는 것으로 정했는데 하루를 쉬었더니 일상에 뭔가 빠진 것 같아 안절부절이다. 그래서 운동은 그냥 하기로 하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랑 매미가 우는소리는 언제부터 나한테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는가를 휴가 기간 동안 생각해 보기로 지금 막 정했다. 휴가는 이제 하루 남은 거다.
언젠가 누나가 어릴 적 기억을 얘기할 때 "학교 갔다 오면 엄마는 집에 항상 없었어, 그땐 정말이지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내가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면서 어릴 적 방과 후 집에 왔을 때 부모의 부재가 제법 안타까웠을 것이라고 본인 자식을 애잔하게 생각하며 얘기한 적이 있다. 어려서든 나이가 들어서든 그때 해야 할 일들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시간들이 일과가 될 텐데 그게 끝나면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집이다.
집을 생각하면 언제고 따뜻하며 안락한 공간이자 나를 반갑게 맞이해줄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 존재할 텐데 그게 소설 속에 나오는 얘기로만 존재하는 상상일 수도 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언제나 엄마가 집에 있었고 배고프지 않냐며 준비해놓은 간식을 내어주거나 "밥 차려줄까?"라고 묻기도 했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하곤 그게 하고 싶어 방에 틀어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으면 또 간식거리를 가지고 오면서 "이거 좀 먹고 해" 하곤 했다. 이따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오렌지 주스와 여러 종류의 과자들을 담은 쟁반을 방에 들여다 줬고, 조금 있다가 "엄마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짜장면 시켜줄까?"라고 물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집에 갔는데 엄마가 없는 날이면 그동안 밀렸던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할 절호의 기회이니 그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려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먹던 걸 흘리고 아무 곳에나 뭔가를 놔두고 실컷 자유를 만끽했다. 혼나는 건 예약되었지만 이 정도 자유에 그런 것쯤은 참을만했다.
이게 어릴 때 내가 상상했었던 것들이다. 누나는 집에 오면 엄마가 항상 없었지만 난 집에 오면 엄마도 누나도 항상 없었다. 신발주머니 던져놓고 물 한 잔을 벌컥 벌컥 마시고 책가방을 맨 체 그대로 드러누워 한동안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게 내가 방과 후 집에 왔을 때 했던 리추얼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잠깐 해야 뭔가 마음이 차분해졌던 기억이다. 내가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TV에서도 봤고 친구들이 늘 얘기 했던 것, 그리고 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벌어지는 일들이었으니까.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생기지 않는걸까 원망하며 상상한 게 아니고 그렇게 상상하면 너무나도 기분 좋아져서 물 한잔 마시고 누워서 잠깐 그런 상상을 했었던 시간이 내 리추얼 된 것이다. 그때는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충분히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 상상 속에 있던 나와 그게 상상이 아닌 친구들의 경험은 똑같은거라고 생각했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내게서 저런 기억을 가져다 줬다.
그리고 책 제목이 이렇게 해석이 됐다.
"너 아니면 나랑 놀아줄 사람 없어, 근데 그래도 괜찮아"
*
쓰고 보니 책 얘기를 너무 안 해서 죄책감에 추가하자면 읽는데 반나절을 보냈지만 하이라이트 한 부분은 거의 없는 상태로 끝나서 결론은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공감과 감정, 그리고 위안의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데 이건 크게 둥근 모양이고 난 별 모양을 하고 있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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